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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사

 

아침에 정말 기분좋게 아메리카노 한잔에 뻥뚫린 도로로 게운하게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해서 평소에 잘 안들여다보는 사무실 구석에 항상 처박혀있는 "조선일보" 를 봤다.

워낙 볼때마다 기분이 별로라 잘 안보는데 오늘은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였을까..? 

휙휙 대제목만 보며 눈에 들어오는 기사만 한숨을 내쉬며 보다가 

아니 왠 2017년에나 볼법한 제목이 보여서 뭐지? 하는 마음에 처음 몇줄을 읽었다.

 

이 칼럼을 쓴 사람은 n번방을 취재했던 여기자 라고 한다.

내용은 굳이 쓸 필요도 없는 2,3년전에 페미붐이 일었을때 그 내용이다.

 

여성들만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꾸밈노동을 억울해하며 탈코르셋 하자 라는 내용이었다.

 

 

 

 

 

 

사회적 이라는 말로 교묘히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코르셋이라는 프레임으로 엄청난 압박속에 살아간다는걸 계속 강조하며 "나는 피해자다!" 라고 외치는게 그들의 논리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고 옷도 대충 입으며 "자유로워졌다" 라고 말한다.

그 자유로움을 얻은후엔 파마한 염색한 긴머리, 진한화장, 비싼옷들을 보며 그들은 자유로워져라!! 라며 또다른 족쇄를 강요한다.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또다른 강요에서 오는 것이었던가?

 

편해지기 위해서, 강요받기 싫어서 벗어던졌으면 본인만 자유로워지면 된다.

여기까진 생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끄덕거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혐오한다.

그나마 교양이 있어야하는 기자라는 사람마저 그 프레임에 갖혀 저런글을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을 이해하려 하나하나 곱씹어보고 한글자한글자 의도를 파악해 보면 결국에 생각의 끝은 한곳에 머문다.

 

"피해의식"

 

 

이 기자는 n번방 사건을 경험이 아닌 상처로 남기고 트라우마가 된듯하다.

 

노동이라는 말은 어떤 재화를 얻기위해 내가 기꺼이 지불하는 신체적, 정신적 노력을 말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을 벌기위해 내 시간, 비용을 들여 출퇴근을 하고 일을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한다.

 

그들은 꾸밈노동이라는 괴단어를 꺼내들며 억울하다 한다.

이는 마치 이 사회는 나에게 돈을 벌기를 자꾸 강요한다. 내 인생을 돈버는데 쏟아붓고있어 억울해.

 

누구도 돈을 벌으라 강요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수근거린다.

히끼꼬모리, 사회부적응자, 백수 등등등..

 

페미들은 여자들에만 강요 받는다 한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강요가 강요라면 남자들도 많다.

 

남자가 돼서 그런것도 못하냐, 남자가 돼서 뭘 그런걸로 쪼잔하게, 남자가 운동신경이... 등등등..

 

물론 여자도 그런게 있겠지만 하고픈 말은 여자만 이라는 말로 선을긋고 갈라치기를 하면 

되받아 남자만 이라는 말로 똑같은 논리들이 얼마든지 많기에 그런 말들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2,3년전까지 엄청나게 불어닥쳤던 페미니스트 운동이 왜 지금은 많이 잦아 들었을까..?

그들의 외치는 피해에는 명확한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만 받는 피해도 아니며, 같은 입장인 사람들 안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너무 극명하다는데서 시간이 지나 이불킥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게된다.

 

이런 논리적 오류를 감추기 위해서는 억지주장, 궤변이 동원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알아차릴정도의 사고가 열려있으면 그렇게 빠져들지도 않았겠지만 

주변에서 아무리 검증을 받아도 눈닫고 귀닫고 또 공격받는다 느끼고 피해받는다 느낀다.

 

 

 

본인이 피해라 느끼고 본인이 억울하다 느껴서 꾸밈노동을 벗어던지고 탈코르셋을 하는건 멋지다.

그걸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혐오하며 본인들 생각을 인정하라며 강요하는 순간 모든건 오류투성이가 된다.

 

이런 철지난 단어들로 칼럼을 쓰고, 그 칼럼을 받아 신문지면상에 아무렇지 않게 실어버리는 언론.

 

 

과연 그들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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